
작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 신학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하루 휴대폰 사용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어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휴대폰이 잠기도록 설정해 놨는데, 그러면 집에 있는 태블릿을 찾아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했어요.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게임을 시작하면 시간이 늦어져도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제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겨우 끄는 날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저도 좋게 말했어요.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이제 그만하고 씻자고 하고, 한 판만 마무리하면 끄라고 기다려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판이 끝나면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됐고, 제가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목소리도 점점 커졌어요. 결국 몇 번을 소리쳐야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아이는 잔뜩 화가 난 채 방문을 닫거나 말도 하지 않았어요. 휴대폰은 껐지만 저와 아이 사이까지 불편해지는 날이 계속됐어요.
그렇다고 게임과 휴대폰을 무조건 못 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아이에게 게임은 단순히 혼자 화면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과 통화하고 같이 노는 시간이기도 했거든요. 반대로 원하는 만큼 계속 보게 둘 수도 없었어요. 숙제가 밀리고, 식사 시간에도 휴대폰을 보고, 잠자는 시간까지 늦어지니 생활 전체가 흐트러지고 있었어요. 어느 한쪽으로만 밀어붙이기보다 우리 집에서 지킬 수 있는 선을 정해야 했어요.

숙제보다 휴대폰을 먼저 찾는 모습이 제일 답답했어요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 가방부터 내려놓고 휴대폰부터 잡는 거죠. 숙제는 조금 있다가 한다고 미루고 친구가 기다린다며 게임부터 켰어요. 제 입장에서는 숙제를 먼저 끝내놓고 마음 편하게 게임하면 될 일이었지만, 아이는 친구들이 모두 접속해 있을 때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금만 하고 끄겠다는 약속도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한 판만 더 하겠다고 하고,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고, 친구가 기다리니 지금 나갈 수 없다고 했어요. 저는 옆에서 숙제하라고 재촉하고 아이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버티면서 매일 같은 대화가 반복됐어요.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문제보다,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는 모습 때문에 더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예전에도 한 번 규칙을 만들어본 적이 있어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작년에도 아이와 휴대폰과 게임 규칙을 손으로 적어가며 정한 적이 있었어요. 주중에는 30분만 사용하기, 주말에는 공부나 할 일을 먼저 하고 게임하기, 늦은 시간에는 게임하지 않기처럼 항목도 여러 개였어요. 그때는 규칙을 많이 적어두면 아이가 더 잘 지킬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방학이 시작되고 생활시간이 흐트러지니 하나씩 지켜지지 않기 시작했어요. 항목이 많다 보니 아이도 헷갈렸고, 저도 매번 전부 확인하기가 어려웠어요.
저런 각서를 쓴 것만 해도 3장은 되는 것 같아요 지장까지 찍었으니... 그야말로 휴대폰과의 전쟁이었죠.
아이와 우리 집 휴대폰 규칙을 만들었어요
계속 소리치고 휴대폰을 빼앗는 방식으로는 오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스스로 멈추는 게 아니라 엄마가 무서워서 잠깐 내려놓는 것뿐이었고, 다음 날이면 똑같은 상황이 다시 시작됐거든요. 그래서 아이와 앉아서 언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이야기했어요.
물론 모든 규칙을 아이가 먼저 제안한 건 아니에요. 저의 반강제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었어요. 그래도 엄마 마음대로 그날그날 뺏는 것보다는 서로 알고 있는 기준이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규칙은 너무 많지 않게 실제로 지킬 수 있는 내용만 정했어요.
- 집에 오면 먼저 깨끗하게 씻기
- 간단한 간식을 먹고 숙제부터 끝내기
- 숙제를 마친 뒤 게임이나 영상 보기
- 저녁식사 시간에는 휴대폰 내려놓기
- 밤 8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끄기
- 휴대폰을 끈 뒤 양치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하기
휴대폰을 아예 못 보게 한 건 아니었어요. 해야 할 일을 먼저 마치면 정해진 시간 안에서는 게임을 해도 된다고 했어요. 아이도 무조건 금지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처음보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어요. 저녁식사 때는 가족 모두 휴대폰을 내려놓기로 했고, 8시 30분 알람은 제가 매번 시간을 확인하며 소리치지 않도록 아이 휴대폰에 직접 맞춰놓았어요.
규칙을 만들었다고 바로 달라지지는 않았죠
처음부터 약속이 잘 지켜진 건 아니었어요. 숙제를 끝냈다고 해서 확인해 보면 빠뜨린 문제가 있었고, 알람이 울려도 게임이 아직 안 끝났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저도 약속했으니 당장 끄라고 몰아붙였고, 아이도 친구들과 게임 중이라며 버티면서 또 부딪혔어요.
규칙을 만들면 다음 날부터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게 오히려 제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이미 익숙해진 습관을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려웠고 어떤 날은 잘 지켰고, 어떤 날은 다시 예전처럼 싸웠어요. 그래도 기준을 없애지는 않았어요. 화가 나더라도 숙제 먼저 하기와 8시 30분에 끄는 약속만큼은 계속 같은 말을 했어요.

지금은 8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휴대폰을 꺼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 6월이 됐어요. 아직도 아이와 휴대폰 문제로 부딪힐 때가 있고, 저도 하루에 몇 번씩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숙제를 빨리 끝내고 게임하려고 대충 하는 날도 있고,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더 보고 싶어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밤 8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친구들에게 이제 자야 한다고 인사하고 휴대폰을 꺼요. 예전에는 제가 몇 번을 소리쳐야 겨우 내려놓았는데, 지금은 알람 소리를 들으면 게임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숙제를 먼저 끝내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규칙도 처음보다는 훨씬 잘 지키고 있어요.
완벽하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전혀 되지 않던 일이 조금씩 습관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규칙을 만들고 반복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넘기기보다 약속을 지킨 날에는 잘했다고 말해주려고 해요. 아이도 자신이 스스로 끌 수 있다는 경험이 쌓여야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조건 못 하게 하는 것보다 절충이 필요했어요
아이에게 휴대폰과 게임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대화하고 같이 놀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금지하면 아이는 휴대폰만 빼앗기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까지 빼앗긴다고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라고 해서 생활습관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었어요. 숙제와 식사, 잠자는 시간은 지켜야 했고, 휴대폰이 그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봤어요. 결국 우리 집에는 완전한 금지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더 잘 맞았어요.
아이마다 성향도 다르고 집마다 생활시간도 다르니 우리 집 규칙이 모든 가정에 맞는 답은 아닐 거예요. 어떤 집은 8시에 끄는 게 맞을 수도 있고, 어떤 집은 사용 시간을 따로 정하는 게 편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부모가 기분에 따라 그날그날 시간을 바꾸기보다 아이가 미리 알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부모인 저도 휴대폰을 내려놓아야 했죠
아이에게 저녁식사 때 휴대폰을 보지 말라고 해놓고 제가 메시지를 확인하면 규칙에 힘이 없어지잖아요. 저도 잠깐만 본다고 해놓고 뉴스를 읽거나 영상을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거든요. 어른인 저도 내려놓기 어려운데 아이에게 의지만으로 참으라고 하는 게 쉬울 리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식사할 때는 휴대폰을 멀리 두려고 해요. 아이가 숙제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계속 화면을 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고요. 물론 저도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아이가 엄마도 보면서 왜 자기만 못 보게 하느냐고 하면 변명하기보다 엄마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같이 내려놓아요.
아이 휴대폰 습관만 고치려다가 저도 제 사용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저도 부끄러운 행동이 많이 있더라고요. 부모가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요구하는 규칙을 부모는 전혀 지키지 않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부딪히지만 우리 집 기준은 생겼어요
휴대폰 규칙을 만들었다고 우리 집이 갑자기 조용해진 건 아니에요. 여전히 게임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날이 있고, 아이가 약속을 어기면 저도 화가 나요. 그래도 예전처럼 매일 휴대폰을 빼앗고 서로 감정이 상한 채 끝나는 날은 확실히 줄었어요.
지금은 아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집에 오면 씻고 숙제를 먼저 해야 하고, 저녁식사 때는 휴대폰을 내려놓아야 하고, 밤 8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기준이 생기니 아이도 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아이가 약속을 어길 수 있고 저도 또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그래도 무조건 못 하게 하거나 화가 날 때마다 휴대폰부터 빼앗는 방식으로 돌아가기보다, 지금 정한 규칙을 꾸준히 지켜보려고 해요. 아이가 스스로 멈추는 연습을 하고, 부모인 저도 기다리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 집만의 맞는 방법을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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